사회적 이슈, 칼럼

소셜네트워크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 글은 LG전자의 공식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구글 플러스는 소셜네트워크가 아니라 아이덴티티 서비스다.’ 2011년 8월 NPR과 인터뷰에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한 말이다. 마크 주커버그는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이 쓴 ‘페이스북 이펙트’라는 책에서 ‘우리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만 가져야 한다’라는 얘기를 세 번이나 강조했다고 한다.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은 진정성의 결여라고 주장했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제프 자비스는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있다고 그의 블로그에서 주장한다. 흔히 얘기하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 파티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정체성이 아니라 우리 본연의 내부에서 자신이 아는 자기의 모습과 남들이 보는 모습 두 가지를 얘기한다. 심리학자이면서 철학자인 조지 허버트 미드는 이를 ‘I’와 ‘Me’로 구분하기도 했다. 즉 프로이드가 말한 에고는 ‘I’이고 ‘Me’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나의 모습이다.

철학적 주제인 ‘자아정체성’을 떠나서 우리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은 ‘개인 정체성’일 수도 ‘사회적 정체성’일 수도 ‘그룹 정체성’일 수도 있다. 이는 기본 적으로 ‘실명’을 기준으로 하는가 아니면 ‘익명 또는 필명’을 기본으로 하는 가에 따라 그 출발선이 달라질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플러스, 카카오스토리 처럼 실명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는 실 세계의 나와 나의 친구, 실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나의 모습은 실제의 나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즉 ‘가상의 나’의 모습이 ‘실재의 나’와 차이는 있으나 그 간격이 크게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의 실 세계에서 바라다 보는 나의 모습을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는 쉽게 부풀려진 나의 모습이나 내가 지향하는 모습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올리고, 남들에게 관심을 받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미투데이와 트위터처럼 얼마든지 익명 또는 필명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서는 내가 만들어 가는 ‘가상의 나’의 모습이 나의 온라인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상상의 나’ 또는 ‘만들어진 나’를 형성해 나가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 또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위대한 개츠비’ 처럼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많은 기대와 루머를 양산하게 하든, ‘리플리’ 처럼 완전히 다른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 소셜 공간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 하는 점이다.

에고 트릭’을 쓴 줄리언 바지니는 자아는 지속적으로 일관되는 심리 상태이지만 항상 변화하고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묶음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특정 기간 동안 지속성을 가지면서 유지되는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보이는 정체성은 파편화되고 신뢰 받지 못하며 정신 분열적 증상일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내 마음의 심연에서 바라다 보는 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든, 남과의 관계 또는 사회적 환경에서 보여주고 싶은 나를 표현하든, 전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든 그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를 통해 관계 형성을 만들어 가고 타인과 교류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당신을 ‘친구’로 맺은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 친구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정체성이 바로 당신이 노력해서 이루어 내 ‘부풀려진 가상의 정체성’이더라도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과의 교류에 행복해 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고, 마음 설레면서 ‘좋아요’를 누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셜네트워크에서 보이는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몇 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있거나 표현할 수 있는가?’, ‘다중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주제는 소셜네트워크의 진화에 있어서 계속 주어질 과제이다.

앞으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몇 개의 정체성을 쉽게 형성하고 이를 관리하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따른 포스팅을 제어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다. 2011년 SXSW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 권리 장전에 이런 요구가 들어간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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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더 느끼는가?

최근들어 SNS 사용자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나 역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전 세계 12억명이 SNS를 사용하는 인류 역사상 없었던 이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애틀란틱 지에 올라오고 (‘Is Facebook Making Us Lonely?), 내가 받아보는 하바드 버크만 센터의 뉴스레터 중에 흥미로운 블로그가 하나 올라와 정독하게 되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조교수이며 버크만 센터의 펠로우인 ZEYNEP TUFEKCI 교수의 글이었다. ‘Does Facebook Cause Loneliness? Short answer, No. Why Are We Discussing this? Long Answer Below.‘ 라는 그녀의 블로그는 이에 관한 많은 연구 자료와 논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Tufekci 교수의 의견은 데이타를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가 인용한 펜실바니아 대학의 Keith N. Hampton 교수의 논문 ‘Core Networks, Social Isolation, and New Media‘에 따르면,

미국 GSS (General Social Survey)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미국인의 경우 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졌고, 코어 네트워크는 더 작아지고 덜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를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와 연관해서 보면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소셜미디어의 특정한 사용에 의해 코어 네트워크를 증가시키고 더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고립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의 그의 파악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연구 논문에는 학생이었던 그의 제자들이 공동 저자로 나오는데 이철주, 허은자 라는 한국 이름이 등장한다)  그의 연구는 2009년 더 퓨 인터넷의 리서치 리포트에 데이타가 잘 나와 있다.

더 퓨인터넷에서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조사 분석을 발표하는데 2011년 6월에 발간한 ‘Social networking and our lives‘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갖는 코어 타이의 평균이나 사회적 지지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다 비 사용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밝혀진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 미국인 중 중요한 얘기를 의논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의 수(discussion confidants)가 2008년 1.93에 비해 2.16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자는 이 숫자가 2.27로 늘고 SNS 사용자는 2.45로 더 증가한다.  SNS 사용자는 더 많이 코어 타이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과 5%만이 그런 친구가 아예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SNS의 긍정적 역할로 볼 수 있다
  • 40%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자기의 실제 제일 가까운 코어 타이의 사람들을 페이스북에서 다 친구를 맺었다고 한다.  즉 실제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이제 페이스북에서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사용자는 사회적 지원의 모든 면에서 (감정적 지원, 동료의식, 도구적 지원)에서 비 사용자에 비해 미국 평균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터넷 사용자라고 해도 동일하게 수준으로 이웃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지역 그룹에 참여도도 비슷하고, 오히려 정치 참여 의지와 투표율은 더 높았다.
이러한 데이타를 보면 적어도 페이스북같은 SNS에서 사람들이 가깝고 신뢰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 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Tufekci 교수의 기본 생각은 인터넷 시대에는 태어나서 얻게되는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ascribed ties”는 약해지고 서로 같은 공감이나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 같은  “achieved ties” 는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교외 거주, 긴 통근 시간, 오랜 근무 시간, 커뮤니티나 시민 기관들의 감소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지 온라인 사회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기사들이 소셜미디어나 기술 때문에 우리가 더 외로워졌다고 하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공감을 표하는 것일까?

그녀의 설명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쨌던 우리는 예전 보다 더 외로워지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향으로 뭔가 쉽게 설명하는 서사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전 보다 더 외로운데 우리가 훨씬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이나 SNS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고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명은 근본적으로 면대면 사회성이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온라인에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오프라인에서도 사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이 외로움이나 고립을 꼭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아직 그녀의 연구 주제인데 (사실 이 설명이 맘에 제일 든다) ‘사이버 비사회성(Cyberasociality)’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실 세계에서 하는 만큼 온라인에서 사회성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성격을 의미한다. (이에 관한 그녀의 논문은 ICWSM2010에서 발표한 ‘Who Acquires Friends hrough Social Media and Why?”Rich Get Richer” versus “Seek and Ye Shall Find“‘ 이다.  또는 아직 준비 중인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우리가 글을 보면서 뇌에서 이를 언어로 변환하여 생각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못하는 난독증이 있듯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회성을 실제 면대면 사회성으로 매핑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이는 어떤 동일한 집단이나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누구는 온라인 사회성을 실제 사회성으로 잘 변환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누구는 이런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온라인 사회성이 부족하면 온라인 활동을 아무리 해도 실제 사회성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면대면 사회성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쓰면서 발견한 에스티마의 블로그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우리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MIT의 사회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교수의 얘기 역시 흥미롭다. 그녀의 최근 저서 ‘Alone Together‘에서 많이 언급한 우리가 더 많은 기술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사람과의 대화와 관계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강연할 때마다 늘 언급하는 책이다).  그녀의 TED 발표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터라 사람들은 기술의 사용이 우리의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오해할 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데이타가 보여주듯이 우리가 소셜미디어나 기술로 더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는 우리에게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까운 친구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 대화의 상실로 인한 사회성 결여를 이끌어 내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터클 교수의 판단은 그녀가 전통적인 시각으로 사람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터클 교수의 얘기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에 비해 더 외로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 지려고 하는 것에는 오히려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변화이다.

오늘 뉴스에서 홀로 사는 가구 비중이 25.3%로 이제 가구 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외로움은 이러한 사회 구성과 현대성이 가져오는 것이지 기술이나 SNS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SNS는 오히려 이러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추가 자료와 기사:

1. ‘‘아는 사람’ 많지만 ‘말할 사람’이 없다‘ – 문화일보.
2. http://www.digitaltrends.com/social-media/study-why-facebook-is-making-people-sad/
3. http://www.slate.com/articles/double_x/doublex/2011/01/the_antisocial_netwo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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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분리 이론 (Six Degrees of Separation) 과 소셜네트워크

2011년 11월 페이스북의 데이타팀이 7억2천백만명의 690억 친구 관계를 분석한 결과 페이스북 사용자의 평균 거리는 4.74라는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6단계 분리’ 이론이 소셜네트워크 상에서는 더 짧아졌다는 소식이 여러 미디어에서 보고 되었다.

6단계 분리 이론은 1967년 하바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이 Psychology Today에 발표한 논문 ‘The Small World Problem‘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밀그램 교수 자신은 ‘6단계 분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6단계 분리 이론을 처음으로 예측한 사람은 헝가리의 극자가이면 저널리스트였던 프리게스 카린시 (Frigyes Karinthy)로 알려져있다.  1929년도에 발표한 그의 단편소설 ‘Chains’ 을 통해서 발전되는 문명의 영향으로 인간 사이의 거리는 더 좁아지는데, 당시 전세계 인구 15억명 중 임의의 사람을 선택해도 5명의 사람을 거치면 연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유명한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Albert-László Barabási)의  ‘링크‘라는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후 많은 소셜네트워킹 연구자들이  이 가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으며, 마이클 구레비치(Michael Gurevich)의 시뮬레이션과 1967년 스탠리 밀그램의 ‘스몰월드’ 실험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실험은 미국내의 사람들간 연결 거리의 평균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지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아니었다.

그의 1967년 실험은 다음과 같다.

1. 출발지로 네브라스카 오마하와 캔사스의 위치타 시를 선택하고 도착지로는 보스톤을 선정하였다.  출발지로 두 도시가 선택된 것은  두 도시가 미국 내에서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고립된 곳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  오마하와 위치타에서 임의로 선택된 사람에게는 편지가 주어지는데, 여기에는 이 연구의 목적과 보스톤의 목표로 설정된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있다.  만일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면 그 편지를 그대로 보내면 되지만,

3. 개인적으로 보스톤에 있는 사람을 모른다면 자기 친구나 친지 중에서 그 사람을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보내도록 한다. 사실 편지에는 이름표가 같이 주어지는데 이 때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싸인해서 보내도록 하며, 동시에 하바드에 엽서를 보내 그 과정을 추적하도록 하였다.

4.  편지가 목표한 사람에게 도달하면 연구자들은 이름표를 검토해서 몇 단계에 걸쳐 왔는지를 확인하고, 도달하지 않은 편지는 도착한 엽서를 통해 어디서 끊어졌는지를 확인한다.

이를 통해  도달한 경로의 평균 길이는 5.5와 6 정도가 되는 것을 확인했지만, 어떤 것은 1,2 단계에서 도착했고 9단계나 10단계를 거친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실험 결과는 임의의 두 사람 사이에 5.2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결국 6단계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실제 도착한 것은 전체  64건에 불과하였고 어떤 실험에서는296건의 편지 중에 232건은 전혀 도착하지 않았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성별간의 전달이 서로 다른 성별 간의 전달보다 세 배나 더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결론으로 미국의 임의의 사람들은 6단계를 통해 연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밀그램 자신이 ‘6단계 분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그 개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밀그램의 이 실험은 그러나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거나 새로운 실험에서 또 다른 결과들이 도출되기도 했다.  일차적인 비판은 스타터로 선택된 사람들이 랜덤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광고에 의해 모집되었다는 점과 다음 상대를 선택할 때 받아야 하는 최종 목적지의 사람을 잘 알거나 가까운 경로에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선택했다는 점인다.  즉 경로상 가장 최소경로를 만들어 낸다는 보장이 안되는 것이고 이는 편향과 과평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2003년에 발행된 던칸 와츠 박사의 ‘Six Degrees: The Science of a Connected Age‘를 보면 밀그램의 실험에는 더 많은 맹점이 나타난다.  일단 출발자로 선정된 사람 중에 100명 정도는 실제로 보스톤에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과 네브라스카에서 선정된200명 중에서도 50%는 모두 블루칩 주식 투자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밀그램은 메일링 리스트를 구입했다고 한다). 즉, 이 실험은 서로 다른 세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심리학자 쥬디스 클라인펠드 (Judith Kleinfeld) 는 밀그램의 실험을 종이 편지가 아닌 이메일을 통해서 수행하고자 밀그램의 실험과 그 이후 다른 학자들의 실험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실험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글로벌 경향을 나타낸다고 전혀 볼 수 없는 수준의 실험들임을 발견하였다.

2001년 콜롬비아 대학의 던칸 와츠 교수와 동료들은 웹사이트를 이용해서 166개국의61,168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전송을 통해 밀그램의 실험을 재현해 보았다. 전송된 이메일의 체인은 23,163개였다. 전 세계의 18명의 대상에 대해 이메일을 도착하게 만드는 이 실험에서는 다양성을 위해 미국의 교수, 호주의 경찰, 에스토니아의 기록물 조사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최종 목적지로 선택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전달된 이메일은 5단계 (같은 나라의 사람들) 내지 7단계 (다른 나라의 사람들)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고 언론은 인터넷이 결코 실 세계의 인간 관계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와츠 교수는 다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실제 이메일이 전달된 것은 384개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야후 리서치로 자리를 옮긴 던칸 왓츠 박사는 2011년에 다시 페이스북을 이용하여 메시지 전달을 통한 세계 사람들 사이의 단계를 발견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웹사이트를 통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바로 페이스북이 실제 사람 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실험에 비해 훨씬 더 실상을 반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2006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에릭 호로비츠와 쥬르 레스코벡 (Eric Horvitz and Jure Leskovec)은 연구의 일환으로 MSN 메신저를 사용하는 전세계 사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 패턴 스냅샷을 캡처했다.  이는 2억4천만 명이 사용한 300억 건이 넘는 대화를 반영한 것으로 그 당시 전세계 인스턴트 메시징 커뮤니케이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텍스트 내용은 제거하고 통계치만 모았으며, 1억8천만개의 노드와 방향성이 없는13억개의 엣지로 구성된  당시 최대의 커뮤니케이션 그래프를 구성했다. 연구의 한 부분으로 소위 말하는 ‘6단계 분리’ 이론을 전 지구적으로 검증하였고, 서로 대화하는 메신저 사용간의 평균 도달 거리는 2006년 7월 기준으로 6.6임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비슷한 나이, 언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 다른 성별간의 대화가 같은 성별간의 대화보다 더 자주있고 더 오래 한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이 결과는 2008년 World Wide Web 컨퍼런스 (WWW2008)에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며, 더 자세한 보고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보고서로 출간되었다.

2010년 Sysomos사는 52억개의 트위터 상의 관계를 기반으로 이 문제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트위터에서의 사람 간의  평균 거리는 4.67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83%의 사람들까지는 5 단계를 거치면 도달할 수 있고, 96%의 사람은 6단계를 거치면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팔로우를 찾아내는 스텝은 단지 3.32 스텝만 가면 팔로우를 만난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 번에 발표한 페이스북 사용자에 대한 연구는 페이스북과 밀라노 대학팀의 공동 연구인데, 99.6%의 사람들 짝은 5단계(6 hops)로 연결이 되며, 92%는 네 단계 (5 hops)로 연결이 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밝혀진 결과는 임의의 두 사람간에는4.74 hops로 2008년의 조사에는 5.28 hops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 동안 궁금했던 평균 친구수도 밝혔는데 10%의 사람들은 10 명 이하의 친구를20%의 사람은 25명 이하지만 평균 친구 수는 190명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페이스북의 공식 통계 페이지에 나타난 130명이 아닌 숫자를 밝혀낸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이는 그동안 던바 넘버인 150명을 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보다는 더 많은 친구 관계가 평균이라는 점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The Pew Internet and American Life Project에서 설문 조사 대상에서는 평균 친구 수가 229명으로 나와서 좀 더 큰 규모 조사 내용을 알고 싶었다.

또한 친구 관계를 같은 국가로 한정하면 분리 단계는 더 짧아 지는데 한 국가로 한정하면 그 숫자는 3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자세한 발표 내용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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