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책읽는 즐거움] REWIRE: Digital Cosmopolitans in the Age of Connection by Ethan Zuckerman

Paragraph 1

Paragraph 2

“현재 연결된 시대의 가장 핵심의 패러독스는 세상의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정보와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 더 없이 쉬워진 반면, 우리는 종종, 덜 연결된 시대보다 세상에 대한 협소한 그림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정보는 글로벌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관심은 아주 지역적이고 부족적이다. 우리는 우리와 그룹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고, 먼 ‘타자’에 대해서는 매우 관심이 적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바꾸는 것과 친구 서클을 넓히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디어가 연결 시대에 필요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재연결’해야 한다.”

“인터넷이 재 연결되어야 하는 세가지 영역은 언어, 개인 연결, 그리고 발견이다. 글로벌 보이스 교훈에서 우리가 추구해 볼 세가지 아이디어는 투명한 번역, 브리지 인물, 기술로 만들어진 세렌디피티 방식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미래를 거침없이 가져올 것이라는 가정은 잘못이다. … 우리가 하나의 믿음에 확신을 갖는 것보다 견해의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세상을 원한다면, 많은 사람의 소리가 특별한 소수와 균형을 이루는 세상을 원한다면, 많은 견해가 이슈를 복잡하게 만들어 더 새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세상을 원한다면,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REWIRE 표지

REWIRE 표지

하버드 대학의 버크만 센터 펠로우였고 MIT 시민 미디어 센터의 디렉터인 에단 주커만은 미디어 학자, 블로거, 인터넷 행동가이다. 그의 신간 ‘재연결(Rewire)’ 은 그가 현재 인터넷이 과연 세상에 대해 다양한 견해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디지털 유토피아적 상황이 왜 일어나지 않는 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버크만 센터에서 수행한 ‘글로벌 보이스’ 프로젝트를 통해서 얻은 교훈과 그가 실제로 아프리카 가나 등에서 체험한 경험이나 다양한 통계와 조사 자료를, 많은 미디어 학자, 사회 학자, 블로거, 인터넷 행동가의 사례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 정확한 상황 인식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염병 사스의 확대와 대응 과정을 보면 연결된 세상이라는 것이 양면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마르코니, 테슬라, 라인골드는 기술에 의한 평화나 공정성 확대, 진정한 글로벌화를 예측했고 인터넷의 등장은 사이버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많은 실제 데이터는 우리는 점점 더 다른 나라의 문화, 뉴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뉴스 사이트를 통한 미디어 소비, 영화나 책과 같은 문화 상품 소비, 여행하는 사람들의 상황 모두 매우 지역적이고 부족적이다. 이는 동질성과 사회적 폐쇄성이 디지털 시대에서도 계속 작용하고 때로는 더 강화되기도 하는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이론의 어젠다 설정, 문지기 이론을 넘어서 소셜 시대에는 독자의 힘이 강화되면서 독자의 관심과 집중이 미디어 소비를 주도하게 된다. 네그라폰테의 데일리 미 개념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한 서스타인 교수 얘기처럼, 하이퍼 개인화된 사회는 사람들이 극심한 동질성을 갖는 반향실 효과로 블로거 역시 정보 코쿤에 살고 있다.

앨리 패리서가 ‘필터 버블’에서 주장했듯이 개인화 기술은 우리가 우연히 알게 될 기회를 줄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좁은 세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발견 기능을 활용할 수로고 과거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보다 다양한 견해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주커만은 이러한 문제를 풀어보기 위한 프로젝트로 전 세계 참여자를 활용해 ‘글로벌 보이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각 국에서 의미 있는 뉴스와 얘기를 모아서 번역하고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100여개국에서 900 여명의 참여자가 있었으나 이 프로젝트는 원하는 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저널리스트, 더 복잡하고 장기간의 얘기보다는 자연 재해나 폭력을 알리고, 사건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이 국제 뉴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충분히 보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가정했고, 낯설지만 매우 흥미로운 나라의 풍부한 이야기는 그 것이 얼마나 낯설고 멋진 이야기라는 것을 독자가 알게 도와주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커만은 이를 통해 세상의 연결 방식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 이게 이 책의 제목이 ‘재연결’인 까닭이다. 인터넷이 재 연결되어야 하는 세가지 영역은 언어, 개인 연결, 그리고 발견이며, 글로벌 보이스 교훈에서 우리가 추구해 볼 세가지 아이디어는 투명한 번역, 브리지 인물, 기술로 만들어진 세렌디피티 방식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투명한 번역으로는 TED와 같은 협업에 의한 방식을 사례를 들고 있지만 동시에 문맥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두 문화의 경험을 갖고 연결할 수 있는 브리지 인물이다.
그러나 브리지 인물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 문화와 사람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성에서 영감과 창조적 에너지를 찾는 제노파일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세렌디피티를 제공하는 기술의 중요성은 브리지 인물과 제노파일이 아이디어 교환에는 중요하지만 미디어 자체가 갖는 단점을 수정하고 우리 견해를 바꾸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주커만의 흥미로운 제시는 도시의 구성과 기능이 세렌디피티를 경험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페이스북의 페이지와 트위터의 트렌딩 토픽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임의적 구조를 통해 새로운 연결을 발견하는 것과 많은 의도적 방황을 하게 만드는 일은 도시가 주는 기능과 유사하게 우리에게 뜻밖의 정보와 재미를 제공해주는 세렌디피티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주커만의 ‘재연결’은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의 연결이 세상의 많은 다양한 정보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사람들이 다양한 견해와 문화적 차이를 즐기고 이를 통해 코스모폴리탄적 사고를 갖게 될 것이라는 미신을 부정한다.

나 역시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정이 그가 제시한 데이터를 통해 통렬히 무너짐을 느꼈다. 현재 소셜 미디어의 위치와 영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학계나 언론에서 논의하는 동질성과 그룹사고, 편향성 등의 문제점을 이 책은 보다 체계적이면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는 제시하는 방식은 때로는 우리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조직이나 국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는 이슈를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기술적 변화를 통해 미디어 소비의 편협성을 극복하자고 제시하기도 한다.

명확하고 체계적인 방식을 제공 하기보다는, 효과를 거두었던 사례들을 통해 가능성이나 숙고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점이 어찌 보면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미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가 궁극적으로 평평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사회가 이런 문제점을 공유하고, 어떻게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를 직시하고, 디지털 유토피아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 좀 더 창의적이고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방식으로 특별한 소수와 다수의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는 세상, 이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메시지이다.

기본
Uncategorized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이 글은 social.lge.co.kr에 기고한 칼럼 내용입니다.

내 친구는 휴가로 외국 해안가에서 사진을 올리고, 또 다른 친구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한 명은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하고, 마지막 친구는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야근을 하거나 과제에 매달리면서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사용하면서 세상에서 나만 힘들고, 외롭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남들은 멋지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 같은데 나는 형편 없는 상황인 듯 하고, 내 글에만 ‘좋아요’나 댓 글이 별로 달리지 않는 것 같고, 관심도 못 받는 것 같다. 왜 그럴까?

2011년 스탠포드의 심리학과 박사과정이었던 알렉스 조단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본 결과 이러한 모습을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스키외 말 대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 것은 쉽다. 그러나 남들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 것은 언제나 매우 힘든데, 왜냐하면 우리가 남들이 실제로 행복한 것 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은 내 불행 보다 더 작게 느끼고 남의 행복은 나의 행복보다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SNS는 이를 더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의 삶의 일부만 보여주고 있으면서 비현실적으로 더 행복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 친구가 늘어날수록 우리가 봐야 하는 글은 더 늘어나고 잘 모르는 사람이 온라인 친구가 되었을 때 더 이런 감정이 늘어나는 것이다.

마드리드 대학의 곤칼브스 교수는 친구 숫자가 354명을 넘어서면 이 경향이 더 커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옥스포드 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가 얘기한 150명의 던바 넘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상대방의 상황을 인지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친구의 수의 한계)를 생각하면, 300명을 넘어서면 우리는 온라인 친구에 대해 정확한 모습이나 상태, 그 배경을 잘 모르게 되어 있다. 우리 대뇌의 인지능력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90년 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이런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판타지와 상상을 덧붙이기 때문이다. 나랑 채팅 하는 사람이 아주 멋지고 다정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상상하면서 얘기했던 경험이 있지 않는가?

트위터에서 조차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느끼는 것보다는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댄 길버트는 말한다. 즉 우리는 보이고 싶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실재 정체성이 아닌 가상의 정체성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대부분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일 경우가 많다. 남들도 다 본인의 실재 모습보다는 지향하는 모습, 또는 자신이 원하고 만들어 내고 싶은 모습을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제이넵 튜페키 교수는 ‘페이스북이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가?’ 라는 글에서 그 이유는 사람들이 느끼는 실제 고립감은 오랜 근무시간, 긴 통근 시간, 커뮤니티의 감소 등에 의한 것이지 온라인 사회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사람은 더 외로워진 이유를 서사적으로 풀이하면서 내가 요즘 온라인 활동을 더 많이 오래 하니 자연스럽게 SNS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고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면대면 사회성의 부족이다. MIT의 셰리 터클 교수의 얘기대로 연결은 많아지지만 대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이 만나서 보여주는 것은 다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것 아닌가?
세 번째 설명은 온라인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인데, 아무리 온라인 활동을 해도 이를 실제 사회성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면대면 사회성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SNS의 밑바탕에는 우리의 욕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나르시시즘과 노출증, 그리고 관음증이 발현되는 공간에서 우리는 남의 과장된 행복과 의도적인 다정스러운 대화에 끼여 들지 못하거나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지 되돌아 봐야 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장하고 화려한 척 하는 온라인 친구를 조금 멀리하고,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 중심으로 타임라인을 재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한 가지는 당신같이 온라인에서 남들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페이스북 포스팅에 ‘좋아요’를 한 번도 받지 못하는 글이 60%를 넘기 때문이다.

기본
사회적 이슈

소셜미디어 공간은 공적 공간인가 아니면 사적 공간인가?

지난 1월 미국 트위터 회사에 한 장의 팩스가 왔다. 미국 뉴욕주 맨해튼 법원의 지방 검사가 요청한 트위터 사용자 말콤 해리스의 트윗 내용을 경찰에 제출하라는 소환장이었다. 여기에는 해리스 계정의 사용자 정보, 이메일 주소, 트윗 내용을 모두 제출하라는 요구서였다.

작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도중 23살의 해리스는 트윗을 통해 사람들을 선동해 위법을 하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고 법정에서 소송 중이었기 때문이다. 맨하튼 지방검사는 해리스의 정보와 트윗을 원했으나 이미 삭제되어 없어졌고 이에 따라 법원에 삭제한 프로파일과 트윗 내용을 제출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해리스는 이미 2월 11일 이전의 트윗을 모두 삭제하였으며 결국 트위터는 삭제한 트윗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트위터는 이를 해리스에게 전달했고 해리스는 이 내용을 다시 트위터에 공개하였다. 트위터 회사는 이에 불복하고 소환장을 파기하기 위한 항소를 했으나 다시 매튜 씨아리노 판사의 엄중한 경고를 받고 결국 3개월 치 분량의 트윗을 제출했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는 트윗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경찰은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트위터 회사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해리스는 삭제를 하였기 때문에 이를 제출할 것인가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씨아리노 판사는 7월 판결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공공 장소에서 소리치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이를 서비스 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등은 이에 대한 증인일 뿐이라는 견해를 말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영장도 필요 없음을 밝혔다. 그는 ‘공공에게 제공한 것은 공공에 속하며 개인이 보유하고자 한 것만 특정 개인에게 속한다’라는 말로 입장을 명확히 했다. 즉 트윗은 사용자가 아닌 트위터가 소유한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힌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와 더불어 우리가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공간이 과연 공적 공간인지 사적 공간인지를 다시 한 번 논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공직자나 연예인, 유명인들이 가끔 실수를 하거나 문제가 되는 글을 올렸다가 ‘사적인 공간에서 지인들과 나눈 얘기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SNS와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공간이 사적이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학계에서는 이미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 있는 다나 보이드 (danah boyd) 박사가 SNS는 사적인가 공적인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를 중재된 공적 공간(mediated public)이라는 특성을 갖는 공간임을 주장했다. 즉, SNS 서비스와 같은 중간 매개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공적 공간이라는 뜻이다. 다나 보이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 지속성 – 시간이 지나도 계속 접근할 수 있는 성격

2. 검색 가능성 –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음

3. 복제성 – 디지털 미디어의 복제 가능성은 대화를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쉽게 이동하게 한다

4. 보이지 않는 청중 – 위의 세 가지 특성으로 누가 언제 내 표현을 읽을 수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성격의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의 모습을 가질 수 없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적 공간은 사회 생활에서 많은 목적을 갖고 있다. 철학자이며 정치학자는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 조건’에서 공적 공간은 사회를 규정하는 사회적 규범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반응으로부터 학습하며, 타인이 인정하는 증언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의 특정한 행위와 표현을 ‘실재’하게 만든다고 했다.

특히 최근의 활용되고 있는 SNS나 소셜미디어는 그 구조와 기능이 매우 개방되고 공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과거 커뮤니티나 미니 홈피와 같이 기능적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 조차 하기 힘든 것이다. 트위터에서 조차 미 하원의원이었던 안토니 위너가 DM이라는 쪽지 기능을 이용해 매우 사적인 대화를 하다 내용이 공개되어 의원직을 사퇴하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거나 운이 나쁜 케이스가 아닌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모든 회사나 기업인들은 자신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가는 순간 그 모든 내용은 공적 공간에 보여지는 것이라는 인식과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 파급 속도가 매우 빠르고 타인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무의미 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주장을 투명하게 얘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기본
사회적 이슈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더 느끼는가?

최근들어 SNS 사용자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나 역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전 세계 12억명이 SNS를 사용하는 인류 역사상 없었던 이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애틀란틱 지에 올라오고 (‘Is Facebook Making Us Lonely?), 내가 받아보는 하바드 버크만 센터의 뉴스레터 중에 흥미로운 블로그가 하나 올라와 정독하게 되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조교수이며 버크만 센터의 펠로우인 ZEYNEP TUFEKCI 교수의 글이었다. ‘Does Facebook Cause Loneliness? Short answer, No. Why Are We Discussing this? Long Answer Below.‘ 라는 그녀의 블로그는 이에 관한 많은 연구 자료와 논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Tufekci 교수의 의견은 데이타를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가 인용한 펜실바니아 대학의 Keith N. Hampton 교수의 논문 ‘Core Networks, Social Isolation, and New Media‘에 따르면,

미국 GSS (General Social Survey)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미국인의 경우 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졌고, 코어 네트워크는 더 작아지고 덜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를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와 연관해서 보면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소셜미디어의 특정한 사용에 의해 코어 네트워크를 증가시키고 더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고립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의 그의 파악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연구 논문에는 학생이었던 그의 제자들이 공동 저자로 나오는데 이철주, 허은자 라는 한국 이름이 등장한다)  그의 연구는 2009년 더 퓨 인터넷의 리서치 리포트에 데이타가 잘 나와 있다.

더 퓨인터넷에서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조사 분석을 발표하는데 2011년 6월에 발간한 ‘Social networking and our lives‘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갖는 코어 타이의 평균이나 사회적 지지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다 비 사용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밝혀진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 미국인 중 중요한 얘기를 의논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의 수(discussion confidants)가 2008년 1.93에 비해 2.16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자는 이 숫자가 2.27로 늘고 SNS 사용자는 2.45로 더 증가한다.  SNS 사용자는 더 많이 코어 타이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과 5%만이 그런 친구가 아예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SNS의 긍정적 역할로 볼 수 있다
  • 40%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자기의 실제 제일 가까운 코어 타이의 사람들을 페이스북에서 다 친구를 맺었다고 한다.  즉 실제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이제 페이스북에서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사용자는 사회적 지원의 모든 면에서 (감정적 지원, 동료의식, 도구적 지원)에서 비 사용자에 비해 미국 평균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터넷 사용자라고 해도 동일하게 수준으로 이웃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지역 그룹에 참여도도 비슷하고, 오히려 정치 참여 의지와 투표율은 더 높았다.
이러한 데이타를 보면 적어도 페이스북같은 SNS에서 사람들이 가깝고 신뢰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 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Tufekci 교수의 기본 생각은 인터넷 시대에는 태어나서 얻게되는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ascribed ties”는 약해지고 서로 같은 공감이나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 같은  “achieved ties” 는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교외 거주, 긴 통근 시간, 오랜 근무 시간, 커뮤니티나 시민 기관들의 감소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지 온라인 사회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기사들이 소셜미디어나 기술 때문에 우리가 더 외로워졌다고 하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공감을 표하는 것일까?

그녀의 설명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쨌던 우리는 예전 보다 더 외로워지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향으로 뭔가 쉽게 설명하는 서사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전 보다 더 외로운데 우리가 훨씬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이나 SNS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고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명은 근본적으로 면대면 사회성이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온라인에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오프라인에서도 사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이 외로움이나 고립을 꼭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아직 그녀의 연구 주제인데 (사실 이 설명이 맘에 제일 든다) ‘사이버 비사회성(Cyberasociality)’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실 세계에서 하는 만큼 온라인에서 사회성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성격을 의미한다. (이에 관한 그녀의 논문은 ICWSM2010에서 발표한 ‘Who Acquires Friends hrough Social Media and Why?”Rich Get Richer” versus “Seek and Ye Shall Find“‘ 이다.  또는 아직 준비 중인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우리가 글을 보면서 뇌에서 이를 언어로 변환하여 생각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못하는 난독증이 있듯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회성을 실제 면대면 사회성으로 매핑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이는 어떤 동일한 집단이나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누구는 온라인 사회성을 실제 사회성으로 잘 변환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누구는 이런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온라인 사회성이 부족하면 온라인 활동을 아무리 해도 실제 사회성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면대면 사회성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쓰면서 발견한 에스티마의 블로그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우리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MIT의 사회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교수의 얘기 역시 흥미롭다. 그녀의 최근 저서 ‘Alone Together‘에서 많이 언급한 우리가 더 많은 기술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사람과의 대화와 관계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강연할 때마다 늘 언급하는 책이다).  그녀의 TED 발표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터라 사람들은 기술의 사용이 우리의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오해할 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데이타가 보여주듯이 우리가 소셜미디어나 기술로 더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는 우리에게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까운 친구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 대화의 상실로 인한 사회성 결여를 이끌어 내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터클 교수의 판단은 그녀가 전통적인 시각으로 사람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터클 교수의 얘기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에 비해 더 외로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 지려고 하는 것에는 오히려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변화이다.

오늘 뉴스에서 홀로 사는 가구 비중이 25.3%로 이제 가구 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외로움은 이러한 사회 구성과 현대성이 가져오는 것이지 기술이나 SNS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SNS는 오히려 이러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추가 자료와 기사:

1. ‘‘아는 사람’ 많지만 ‘말할 사람’이 없다‘ – 문화일보.
2. http://www.digitaltrends.com/social-media/study-why-facebook-is-making-people-sad/
3. http://www.slate.com/articles/double_x/doublex/2011/01/the_antisocial_network.html

기본
사회적 이슈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2011년 11월 퓨 연구소(The Pew Research Center)는 미국인 2,277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최신 조사 자료(Why American Use Social Media)를 발표하였는데,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제일 중요한 이유로 67%는 현재 친구들과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꼽았고, 64%는 가족과 관계 유지를 50%는 연락이 끊어졌던 옛날 친구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다.  취미나 흥미가 같은 타인과 연결은 14%, 유명인, 운동 선수, 정치인들의 얘기를 읽기 위한 것은 5%, 잠재적인 로맨스나 데이트 상대를 찾기 위한 것은 3%로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의 이유를 들은 사람은 여성 사용자와 남성 사용자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여성은 72%인데 반해 남성은 55%가 이유로 꼽았다. 공통의 취미와 흥미를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한 목적은 30-49세의 사람들의 16%, 50-64세의 사람의 18%에 비해 18-29세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10%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목적에는 오히려 남자의 56%가 1차 이유 또는 부차적 이유라고 말했고, 여성 사용자의 44%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국내 사용자들에 대한 조사와는 조금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지난 2010년 10월 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마이크로블로그 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마이크로블로그로 분류되는 트위터와 미투데이 사용자 2,24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사용 계기의 1위는 81.2%가 ‘정보습득을 위해서’였고 2위가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66.1%)’ 였고,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35.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트위터의 주 목적이 뉴스와 정보습득이라는 2010년의 조사와 같은 맥락이며, 실명보다 필명을 사용하는 네트워크에서는 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 목적일 수 밖에 없는 가정에 맞는 조사 결과이다. 즉, 퓨 연구소의 조사 처럼 실명과 실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SNS에서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친구나 가족 관계 유지가 당연히 중요한 동기나 목적이 되지만, 트위터나 미투데와 같이 필명이나 익명을 기반으로 하고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기반을 하는 경우에는 정보와 새로운 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트위터에서 유명인이나 공인 처럼 실명 기반의 사용자들은 자신의 생각 전파나 팬 관리라는 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의 사용 동기에 대한 초기 학계의 연구는 2007년 11월 CACM에 발표한 뉴욕 폴리테크닉 대학의 Oded Nov 교수의 ‘What Motivates Wikipedians?‘와 2004년 마찬가지로 CACM에서 발간된 UC Irvine의 Nardi 교수와 스탠포드 대학 CSLI의 Diane Schiano 등이 조사한 논문인 ‘Why We Blog‘ 등이 있다.Nov 교수는 위키피디어에 공헌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오픈소스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유사함을 기반으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동기 모델에 오픈소스 사용자의 특성을 더해서 조사하였고, 가장 큰 동기는 흥미롭게도 ‘재미’였다. 물론 동기가 높다고 참여의 활동성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밝혔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 참여동기는 동기 측면에서는 2위에 해당하지만 실제 그런 동기 보유자들의 참여 수준은 매우 낮음을 찾아낸 점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스탠포드 학생들의 블로그 활동을 중심으로 조사한 Nardi 교수의 논문에서는 사람들이 다양한 동기를 갖고 블로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일상 기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의견의 제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블로그 작성 과정에서의 아이디어 창출’, ‘블로그를 커뮤니티 포럼으로 사용하기’ 등의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었다.2008년 영국 Bath 대학의 경영대 Adam Joinson이 CHI2008에서 발표한 논문 ‘‘Looking at’, ‘Looking up’, ‘Keeping up with’ People? Motives and Uses of Facebook‘ 은 페이스북의 사용 목적에 초점을 맞춘 논문이다.  미디어 분야의 수용자 연구 이론인 ‘이용과충족이론 (Use and Gratification Theory)를 기반으로 분석한 이 논문에서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즐긴다고 생각할 때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과 페이스북을 즐기는 것을 어떤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지, 어떤 사용이 가장 중요한지 등을 물어봤다. 결과 소셜 커넥션의 충족은 사용 빈도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콘텐트에 대한 충족은 사용시간의 증가를 가져왔다.  또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surveillance에 대한 욕구는 사이트 방문 횟수의 증가를 가져옴을 알 수 있었다.

이 처럼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SNS나 소셜미디어의 참여 동기와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으며, 이를 연령 별, 성별, 인종별로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설문 조사를 다시 확인하는 연구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즉, 사용자들이 얘기하는 동기나 욕구충족을 위해 진짜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하는 행위데이타를 우리가 이제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친구나 가족과 커뮤니케이션이 타인에 비해 그만큼 있었는지 실제 데이타를 갖고 분석하여 확인하는 작업이 이제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