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책읽는 즐거움] Too Big To Know – Rethinking Knowledge Now that the Facts aren’t the Facts, Experts are Everywhere, and the Smartest Person in the Room is the Room by David Weinberger

이 서평은 정보화진흥원의 요청으로 작년 말에 정리한 것입니다. 이 책은 아직 국내 번역이 나오지 않아서 원서로만 읽을 수 있습니다.

Too_Big_to_Know

“지식은 이제 더 이상 도서관이나 박물관, 학술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이제 네트워크의 특성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지식은 책이나 머리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그 자체에서 존재한다”

“진실과 지식으로 이르는 길은 서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개방된 만남을 통해서이다.”

“지식의 네트워크는 인터넷 자체가 경계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를 갖지 않는다. 지식이 피라미드 식이고 커뮤니티의 모든 멤버들에게 공유되는 굳건한 기반에 기초한 경우, 믿을 수 있는 권위를 통해 필터 될 경우는 형태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식의 형태 없음은 새로운 활력을 주며 기본적으로 세상과의 관계이다.”

“과학에서 지속적인 현재는 언젠가 누가 무엇을 발견했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발견 그 자체가 공공적 협력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때로는 협력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버크만 센터 펠로우인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철학자이면서 기술학자이고 연설가이다. 그의 신간 ‘너무나 커서 알 수가 없다’는 인터넷 시대의 지식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지식의 시대를 얘기한다. (그의 과거 저서들은 http://www.hyperorg.com/speaker/ 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책에 대한 웹 사이트는 http://www.toobigtoknow.com/에 따로 존재한다)

지식은 이제 과거 책이나 도서관, 학술지에 머물면서 특정한 형태와 형성되는 과정의 표준적인 모형을 넘어서서 네트워크에 의해 새로운 형태와 특성을 갖게 된다고 얘기한다. 더군다나 그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과 내용이 아닌 네트워크 자체의 특성이고 네트워크 자체가 지식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지식은 경계도 없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변화되며, 모든 데이터와 소스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프로세스와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 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동시에 이런 특성 때문에 갖는 지식의 위기 역시 중요하게 거론한다. 너무나 많은 데이터와 정보는 때로는 어떠한 것도 하나의 결과로 이르게 하지 못하며, 사실이라는 것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때로는 카스 선스틴이 얘기했던 집단사고와 편향화를 가질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주의할 것은 지나친 ‘동질화’의 문제이다.

새로운 지식은 지식의 네트워크이며 네트워크 자체가 가장 스마트해지는 것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책 전체에 계속 반복되는데 이러한 특성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 자체가 결국 우리가 현재 활용하고 있는 인터넷이 갖는 특징에서부터 야기되는 점을 지적한다.

인터넷은 웹 페이지이라는 모습과 하이퍼링크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과거 책이나 종이에 한정 받은 지식의 표현과 달리 형태가 존재하지 않고 무한히 커지고 수 많은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다양한 의견과 이론이 교차하고 연결되는 특성이 있으며 이는 과학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경영의 측면에서도 과거 피라미드식 구조에서 최고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이제 네트워크 전체가 움직이는 분산화된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들어서 보이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데이터와 정보가 너무 크고 많아서 무엇이 진실임을 알 수 없을 수가 있는 데, 현재의 지식은 바로 이렇게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연결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모든 사람이 다 동등한 위치는 아니고 그 안에서 다시 허브가 형성되고 서브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하이퍼네트워크’의 시대이지만 그 허브들이 과거의 전문가나 학자들만은 아니라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지식 생성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큰 특징이다.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제시되며 여러 반증이나 서로 다른 주장도 소개가 된다. 그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지식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실을 확인하고 지식을 공유해야 하거나 인정해야 할 것인가? 아직 이 주제에 대해서는 결국 각자의 판단에 의해 최종 멈추는 지점이 있을 것인데, 아직은 그런 정지 점은 우리가 믿고 권위가 있는 기관들의 정보나 사이트일 것이다라고 말 하고 있을 뿐이다. 믿을 수 없고 흥미 중심의 얘기 역시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고 자주 인용될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고 그런 사례들도 많다. 최근 다른 서적인 클레이 존슨의 ‘똑똑한 정보밥상’에서는 그래서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 보다 가치 있고 균형적인 정보 소비가 이 시대에 왜 또 중요한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의 생성이 어떤 지식에 해당하는 지에 대해 아직은 명료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왜냐면 사람들이 지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과학적 지식과 뉴스의 진실성, 상식 수준의 정보, 인문 사회학적 지식의 다양한 영역에 따라 지식이 갖춰야 할 특성이 다르게 생각할 것인데, 이 것을 단지 ‘지식’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아직 무리함이 있다.

이는 저자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던적인 해석, 과학철학적 해석에 어느 정도 호의를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런 주장을 하면서 왜 본인은 책이라는 방식으로 출판을 했는가에 대해 자기 엄마가 자랑스러워 하고 출판사가 선금을 주기 때문이라는 농담도 잊지 않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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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사회적 이슈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더 느끼는가?

최근들어 SNS 사용자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나 역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전 세계 12억명이 SNS를 사용하는 인류 역사상 없었던 이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애틀란틱 지에 올라오고 (‘Is Facebook Making Us Lonely?), 내가 받아보는 하바드 버크만 센터의 뉴스레터 중에 흥미로운 블로그가 하나 올라와 정독하게 되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조교수이며 버크만 센터의 펠로우인 ZEYNEP TUFEKCI 교수의 글이었다. ‘Does Facebook Cause Loneliness? Short answer, No. Why Are We Discussing this? Long Answer Below.‘ 라는 그녀의 블로그는 이에 관한 많은 연구 자료와 논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Tufekci 교수의 의견은 데이타를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가 인용한 펜실바니아 대학의 Keith N. Hampton 교수의 논문 ‘Core Networks, Social Isolation, and New Media‘에 따르면,

미국 GSS (General Social Survey)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미국인의 경우 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졌고, 코어 네트워크는 더 작아지고 덜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를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와 연관해서 보면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소셜미디어의 특정한 사용에 의해 코어 네트워크를 증가시키고 더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고립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의 그의 파악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연구 논문에는 학생이었던 그의 제자들이 공동 저자로 나오는데 이철주, 허은자 라는 한국 이름이 등장한다)  그의 연구는 2009년 더 퓨 인터넷의 리서치 리포트에 데이타가 잘 나와 있다.

더 퓨인터넷에서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조사 분석을 발표하는데 2011년 6월에 발간한 ‘Social networking and our lives‘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갖는 코어 타이의 평균이나 사회적 지지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다 비 사용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밝혀진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 미국인 중 중요한 얘기를 의논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의 수(discussion confidants)가 2008년 1.93에 비해 2.16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자는 이 숫자가 2.27로 늘고 SNS 사용자는 2.45로 더 증가한다.  SNS 사용자는 더 많이 코어 타이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과 5%만이 그런 친구가 아예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SNS의 긍정적 역할로 볼 수 있다
  • 40%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자기의 실제 제일 가까운 코어 타이의 사람들을 페이스북에서 다 친구를 맺었다고 한다.  즉 실제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이제 페이스북에서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사용자는 사회적 지원의 모든 면에서 (감정적 지원, 동료의식, 도구적 지원)에서 비 사용자에 비해 미국 평균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터넷 사용자라고 해도 동일하게 수준으로 이웃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지역 그룹에 참여도도 비슷하고, 오히려 정치 참여 의지와 투표율은 더 높았다.
이러한 데이타를 보면 적어도 페이스북같은 SNS에서 사람들이 가깝고 신뢰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 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Tufekci 교수의 기본 생각은 인터넷 시대에는 태어나서 얻게되는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ascribed ties”는 약해지고 서로 같은 공감이나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 같은  “achieved ties” 는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교외 거주, 긴 통근 시간, 오랜 근무 시간, 커뮤니티나 시민 기관들의 감소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지 온라인 사회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기사들이 소셜미디어나 기술 때문에 우리가 더 외로워졌다고 하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공감을 표하는 것일까?

그녀의 설명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쨌던 우리는 예전 보다 더 외로워지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향으로 뭔가 쉽게 설명하는 서사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전 보다 더 외로운데 우리가 훨씬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이나 SNS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고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명은 근본적으로 면대면 사회성이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온라인에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오프라인에서도 사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이 외로움이나 고립을 꼭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아직 그녀의 연구 주제인데 (사실 이 설명이 맘에 제일 든다) ‘사이버 비사회성(Cyberasociality)’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실 세계에서 하는 만큼 온라인에서 사회성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성격을 의미한다. (이에 관한 그녀의 논문은 ICWSM2010에서 발표한 ‘Who Acquires Friends hrough Social Media and Why?”Rich Get Richer” versus “Seek and Ye Shall Find“‘ 이다.  또는 아직 준비 중인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우리가 글을 보면서 뇌에서 이를 언어로 변환하여 생각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못하는 난독증이 있듯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회성을 실제 면대면 사회성으로 매핑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이는 어떤 동일한 집단이나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누구는 온라인 사회성을 실제 사회성으로 잘 변환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누구는 이런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온라인 사회성이 부족하면 온라인 활동을 아무리 해도 실제 사회성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면대면 사회성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쓰면서 발견한 에스티마의 블로그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우리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MIT의 사회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교수의 얘기 역시 흥미롭다. 그녀의 최근 저서 ‘Alone Together‘에서 많이 언급한 우리가 더 많은 기술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사람과의 대화와 관계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강연할 때마다 늘 언급하는 책이다).  그녀의 TED 발표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터라 사람들은 기술의 사용이 우리의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오해할 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데이타가 보여주듯이 우리가 소셜미디어나 기술로 더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는 우리에게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까운 친구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 대화의 상실로 인한 사회성 결여를 이끌어 내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터클 교수의 판단은 그녀가 전통적인 시각으로 사람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터클 교수의 얘기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에 비해 더 외로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 지려고 하는 것에는 오히려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변화이다.

오늘 뉴스에서 홀로 사는 가구 비중이 25.3%로 이제 가구 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외로움은 이러한 사회 구성과 현대성이 가져오는 것이지 기술이나 SNS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SNS는 오히려 이러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추가 자료와 기사:

1. ‘‘아는 사람’ 많지만 ‘말할 사람’이 없다‘ – 문화일보.
2. http://www.digitaltrends.com/social-media/study-why-facebook-is-making-people-sad/
3. http://www.slate.com/articles/double_x/doublex/2011/01/the_antisocial_netwo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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