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칼럼

소셜 미디어에서 나는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 (파트 1)

사람들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영향을 주는 소위 ‘영향력자’를 찾아내고 그 들과 좋은 관계와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주제는 심리학, 사회심리학, 조직학, 언론정보학, 인지과학, 경영학 등에서 꾸준히 연구되어 온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여러 분은 최근 1년 동안 누구에게 가장 영향을 받았을까? 과거 많은 연구는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인터뷰나 설문 조사를 통해서 이를 확인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실제 영향을 받은 사람을 잘 파악하지도 못하거나 부정확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람들은 최근에 받은 영향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엇인가를 구매하게 만들거나, 행동을 따라 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변하게 만드는 수준까지의 영향력을 얘기할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책 ‘티핑 포인트’에서 소수의 법칙을 얘기하면서 이러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커넥터, 메이븐, 세일즈맨으로 분류하여 얘기하기도 하였다. 커넥터는 허브로서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입소문 배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메이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지식인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지식을 전파하거나 커넥터의 얘기에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지를 표현하는 사람이다. 세일즈맨은 말 그래도 남을 설득하고, 남들의 행동이 이루어지게 유도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이 처음 스마트 폰을 구입하게 만든 것은 누구의 영향일까? 트위터나 블로그에서 유명인이 언급하고 그 장점과 뛰어난 점을 찬양하는 전문가의 글을 읽고 샀을까 아니면 사야만 하는 이유를 떠들고, 자기가 산 스마트폰의 우수함을 매번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최종 의사 결정을 했는가?

아니면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구입하는 것을 보고 어떤 압박감을 느껴서 산 것일까? 아니 저 친구마저? 하면서 이제 안 사고는 얘기에 낄 수도 없고, 친구들 앞에서 전화기를 꺼낼 수도 없게 되어서 산 것일까?

선거에서 여러분이 투표장에 가게 만든 것은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트위터에서 투표율이 어느 이상 되면 춤을 추겠다는 트윗을 보고 결심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이를 보도한 언론을 보고 결심한 것인지 또는 그냥 친구의 포스팅을 보다가 결정한 것일까?

초기의 연구들은 소위 허브라는 사람들, 즉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 링크가 있는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편물 전달 실험을 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이런 허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론 정보학에서는 매스 미디어의 메시지는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 보다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2단계 유통 이론이 50년대부터 관찰되어 왔고 아직도 많이 언급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영향력자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던칸 와츠 박사는 소위 ‘허브’가 존재하고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핵심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여러 번 발표했다. 허브 못지 않게 또 다른 상황이나 요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메시지 전파에서도 두 단계 영향보다는 서로에게 주고 받는 복잡하게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가 존재함도 밝혔다.

그러나 201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트위터에서는 단지 2만 명에 불과한 (연구 대상의 0.05%) ‘트위터 엘리트’들의 트윗이 소비되는 트윗의 50%에 해당하며 (이 들이 생성하는 트윗의 양은 적으나 팔로워들을 통해 전파되는 비중이 높다) 이를 통해 트위터에서는 2단계 유통 이론이 다시 확인되었다고 했다. 트위터 공간은 전형적인 미디어 네트워크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내 연구팀이 국내 트위터 공간에 대한 영향력자 분석을 해보았을 때 정보를 전달하고 확산시키는 데에 역할을 많이 하는 사람과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토의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다른 그룹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링크가 포함되어 있는 트윗을 RT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그룹의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어떤 주제에 대해 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며 토의하도록 유발 시키는 그룹의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를 ‘정보 영향력자’와 ‘어젠다 세터’라는 그룹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네이버 블로그 분석을 통해서는 소위 파워블로거가 모두 다 영향을 강하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 구독자들과 블로거의 감성적 유사성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영향을 많이 받게 됨을 알아낸 적이 있다.

단지 구독자가 많거나 포스팅을 자주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유사한 태그 사용 이 많은, 상호 공감 가능성이 높은 구독자를 가진 블로거가 더 역할이 크고, 그 구독자들이 블로거의 내용을 퍼뜨리거나 자기 블로그에 내용을 참조하고, 행동을 따라 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음 편에서는 다른 소셜 미디어에서는 영향력자의 특성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며, 영향력 분석에서 보다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그 결과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지에 대해 얘기하도록 한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반대로 집단지성에 어떤 부정적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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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 글은 LG전자의 공식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구글 플러스는 소셜네트워크가 아니라 아이덴티티 서비스다.’ 2011년 8월 NPR과 인터뷰에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한 말이다. 마크 주커버그는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이 쓴 ‘페이스북 이펙트’라는 책에서 ‘우리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만 가져야 한다’라는 얘기를 세 번이나 강조했다고 한다.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은 진정성의 결여라고 주장했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제프 자비스는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있다고 그의 블로그에서 주장한다. 흔히 얘기하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 파티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정체성이 아니라 우리 본연의 내부에서 자신이 아는 자기의 모습과 남들이 보는 모습 두 가지를 얘기한다. 심리학자이면서 철학자인 조지 허버트 미드는 이를 ‘I’와 ‘Me’로 구분하기도 했다. 즉 프로이드가 말한 에고는 ‘I’이고 ‘Me’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나의 모습이다.

철학적 주제인 ‘자아정체성’을 떠나서 우리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은 ‘개인 정체성’일 수도 ‘사회적 정체성’일 수도 ‘그룹 정체성’일 수도 있다. 이는 기본 적으로 ‘실명’을 기준으로 하는가 아니면 ‘익명 또는 필명’을 기본으로 하는 가에 따라 그 출발선이 달라질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플러스, 카카오스토리 처럼 실명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는 실 세계의 나와 나의 친구, 실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나의 모습은 실제의 나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즉 ‘가상의 나’의 모습이 ‘실재의 나’와 차이는 있으나 그 간격이 크게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의 실 세계에서 바라다 보는 나의 모습을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는 쉽게 부풀려진 나의 모습이나 내가 지향하는 모습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올리고, 남들에게 관심을 받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미투데이와 트위터처럼 얼마든지 익명 또는 필명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서는 내가 만들어 가는 ‘가상의 나’의 모습이 나의 온라인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상상의 나’ 또는 ‘만들어진 나’를 형성해 나가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 또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위대한 개츠비’ 처럼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많은 기대와 루머를 양산하게 하든, ‘리플리’ 처럼 완전히 다른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 소셜 공간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 하는 점이다.

에고 트릭’을 쓴 줄리언 바지니는 자아는 지속적으로 일관되는 심리 상태이지만 항상 변화하고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묶음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특정 기간 동안 지속성을 가지면서 유지되는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보이는 정체성은 파편화되고 신뢰 받지 못하며 정신 분열적 증상일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내 마음의 심연에서 바라다 보는 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든, 남과의 관계 또는 사회적 환경에서 보여주고 싶은 나를 표현하든, 전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든 그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를 통해 관계 형성을 만들어 가고 타인과 교류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당신을 ‘친구’로 맺은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 친구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정체성이 바로 당신이 노력해서 이루어 내 ‘부풀려진 가상의 정체성’이더라도 사람들은 바로 그 ‘사람’과의 교류에 행복해 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고, 마음 설레면서 ‘좋아요’를 누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셜네트워크에서 보이는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몇 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있거나 표현할 수 있는가?’, ‘다중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주제는 소셜네트워크의 진화에 있어서 계속 주어질 과제이다.

앞으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몇 개의 정체성을 쉽게 형성하고 이를 관리하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따른 포스팅을 제어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다. 2011년 SXSW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 권리 장전에 이런 요구가 들어간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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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공간은 공적 공간인가 아니면 사적 공간인가?

지난 1월 미국 트위터 회사에 한 장의 팩스가 왔다. 미국 뉴욕주 맨해튼 법원의 지방 검사가 요청한 트위터 사용자 말콤 해리스의 트윗 내용을 경찰에 제출하라는 소환장이었다. 여기에는 해리스 계정의 사용자 정보, 이메일 주소, 트윗 내용을 모두 제출하라는 요구서였다.

작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도중 23살의 해리스는 트윗을 통해 사람들을 선동해 위법을 하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고 법정에서 소송 중이었기 때문이다. 맨하튼 지방검사는 해리스의 정보와 트윗을 원했으나 이미 삭제되어 없어졌고 이에 따라 법원에 삭제한 프로파일과 트윗 내용을 제출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해리스는 이미 2월 11일 이전의 트윗을 모두 삭제하였으며 결국 트위터는 삭제한 트윗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트위터는 이를 해리스에게 전달했고 해리스는 이 내용을 다시 트위터에 공개하였다. 트위터 회사는 이에 불복하고 소환장을 파기하기 위한 항소를 했으나 다시 매튜 씨아리노 판사의 엄중한 경고를 받고 결국 3개월 치 분량의 트윗을 제출했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는 트윗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경찰은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트위터 회사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해리스는 삭제를 하였기 때문에 이를 제출할 것인가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씨아리노 판사는 7월 판결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공공 장소에서 소리치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이를 서비스 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등은 이에 대한 증인일 뿐이라는 견해를 말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영장도 필요 없음을 밝혔다. 그는 ‘공공에게 제공한 것은 공공에 속하며 개인이 보유하고자 한 것만 특정 개인에게 속한다’라는 말로 입장을 명확히 했다. 즉 트윗은 사용자가 아닌 트위터가 소유한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힌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와 더불어 우리가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공간이 과연 공적 공간인지 사적 공간인지를 다시 한 번 논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공직자나 연예인, 유명인들이 가끔 실수를 하거나 문제가 되는 글을 올렸다가 ‘사적인 공간에서 지인들과 나눈 얘기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SNS와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공간이 사적이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학계에서는 이미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 있는 다나 보이드 (danah boyd) 박사가 SNS는 사적인가 공적인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를 중재된 공적 공간(mediated public)이라는 특성을 갖는 공간임을 주장했다. 즉, SNS 서비스와 같은 중간 매개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공적 공간이라는 뜻이다. 다나 보이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 지속성 – 시간이 지나도 계속 접근할 수 있는 성격

2. 검색 가능성 –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음

3. 복제성 – 디지털 미디어의 복제 가능성은 대화를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쉽게 이동하게 한다

4. 보이지 않는 청중 – 위의 세 가지 특성으로 누가 언제 내 표현을 읽을 수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성격의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의 모습을 가질 수 없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적 공간은 사회 생활에서 많은 목적을 갖고 있다. 철학자이며 정치학자는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 조건’에서 공적 공간은 사회를 규정하는 사회적 규범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반응으로부터 학습하며, 타인이 인정하는 증언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의 특정한 행위와 표현을 ‘실재’하게 만든다고 했다.

특히 최근의 활용되고 있는 SNS나 소셜미디어는 그 구조와 기능이 매우 개방되고 공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과거 커뮤니티나 미니 홈피와 같이 기능적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 조차 하기 힘든 것이다. 트위터에서 조차 미 하원의원이었던 안토니 위너가 DM이라는 쪽지 기능을 이용해 매우 사적인 대화를 하다 내용이 공개되어 의원직을 사퇴하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거나 운이 나쁜 케이스가 아닌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모든 회사나 기업인들은 자신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가는 순간 그 모든 내용은 공적 공간에 보여지는 것이라는 인식과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 파급 속도가 매우 빠르고 타인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무의미 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주장을 투명하게 얘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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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커넥티드, 하이퍼 커뮤니케이션, 하이퍼 퍼블릭 사회

최근 몇 개월 동안 정보화진흥원 의뢰로 흥미로운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미래 IT 기술이 가져올 정보 문화의 변화를 가늠해 보는 연구이고, 이를 위해 사회학 전공자 뿐만 아니라 평소 교류를 많이 하는 이경전 교수, 정지훈 교수, 정철 교수와 함께 논의하면서 과제를 마쳤다.

이 과제를 통해서 내가 예측해 보는 사회적 변화의 키워드는 크게 세가지 ‘하이퍼’ 이다. 하이퍼 커넥티드, 하이퍼 커뮤니케이션, 하이퍼 퍼블릭 사회로 개인과 사회의 정보 문화가 진화하는 중이고 앞으로 그 변화는 점점 더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내한한 가트너의 ‘모렐로’ 부사장 역시 하이퍼 커넥티드 사회의 도래를 역설함으로써 내가 보는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서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람과 기업, 조직이 끊임없이 연결되어가는 사회가 바로 하이퍼 커넥티드 사회이다.

하이퍼 커넥티드의 개념은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학계에서는 토론토 대학의 배리 웰만 교수 등에 의해 논의되었고, 마이크로 블로깅이 확산되던 2007년 BBC는 ‘하이퍼 커넥티드 세대가 떠오른다‘라는 기사를 올렸다. BBC의 기사에서는 새로운 밀레니움 세대가 자이쿠나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 블로깅과 새로운 모바일 디바이스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수 많은 사람에게 연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올해 2월 더 퓨 인터넷 앤 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는 밀레니움 세대가 하이퍼 커넥티드 생활에서 얻는 잇점과 문제점을 정리한 리포트를 발표한다. 이 리포트에서 밀레니움 세대는 인터넷을 ‘외부 뇌’ 처럼 활용하면서 그 윗 세대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은 2020년까지 매우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갖는 문제는 즉각적인 만족과 빠른 수정에 대해 갈증과 인내의 부족, 빠른 스윗칭에 의한 집중 부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하이퍼 커넥티드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새로운 디지털 격차와 기기에 대한 심각한 중독성이다. 과거의 세대간 격차가 아닌 이젠 세내 내부의 격차, 단 10분도 연결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중독적 상황이 초 연결 사회에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특히 연결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과 감성을 얻지 못하는 사람 중에 자발적이 아닌 환경과 교육의 문제로 배제되는 사람들을 사회가 어떻게 끌어 안을 것인가는 이제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미 유럽은 ‘e-Inclusion‘이라는 프로그램을 2000년대 부터 추진하기 시작해서 2010년 유럽을 위한 디지털 어젠다에 반영하였다.

하이퍼 커넥티드 사회가 이루어지면서 다음으로 나타나는 큰 변화의 흐름은 하이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도구가 아닌 새로운 상호작용 방식과 전달 체계, 미디어를 통한 초 커뮤니케이션 사회이다. 한 사람이 수십반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기기들의 정보가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위한 데이터를 전송하고, 새로운 방식의 공유와 확산이 만들어 내는 사회의 모습이다. 이미 기업은 기존의 웹페이지가 아닌 페이스북 페이지를 이용해 수천만 명의 팬과 소통하고 그 팬들 간의 대화가 기업간의 대화와 상호 엮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KONY2012’ 같은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유튜브 비디오가 4일만에 1억 시청을 달성하는 시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영어가 아닌데도 한 달 여만에 1억 2천만 뷰를 달성하는 사회는 과거에 없던 메시지와 콘텐트 전달 방식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제 좀 더 깊고, 넓으면, 다양한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정치 캠페인과 사회 운동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기업에 의해 추진되었던 SOPA(Stop Online Piracy Act)가 구글, 위키피디어, 페이스북 등을 통한 시민들의 저항으로 폐기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의 가속을 가져오면서 사람들에게 이제는 디지털 정체성이 본인의 실세계 정체성 못지 않게 중요하며, 오히려 디지털 정체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황을 가져오기도 한다. ‘트윗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weet, therefore I am)‘이라는 2010년 뉴욕타임즈 기사가 이제 전혀 흥미롭거나 낯선 얘기가 되지 않아진 것이다.

2011년 하버드 대학의 버크만 센터에서는 흥미로운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Hyper-Public: A Symposium on Designing Privacy and Public Space in the Connected World‘이라는 이름을 걸고 열린 이 심포지움에는 미디어 전문가, 법학자, 디자이너, 건축가 등이 모여서 점점 확산되는 공공 공간 (실 세계 뿐만 아니라 가상 세계에서도)과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새롭게 균형을 이루고 사회적 관념이 변화될 수 있는가, 어떠한 디자인이 이를 반영할 수 있는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의미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이 주제가 바로 하이퍼 커넥티드와 하이퍼 커뮤니케이션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져올 새로운 정보 문화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퍼 퍼블릭 사회는 우리의 연결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발생하는 수 많은 데이터가 사적인 공간이 아닌 공공의 장소에서 노출되고 공유되고 활용되는 사회이다. 수많은 스마트 디바이스와 연결된 개인의 행동 데이터는 본인이 원하는 정도와 상관 없이 파악되고 분석되며, 때로는 보다 지능적 서비스를 통해서 더욱 품질좋고 만족스러운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데이터가 활용되고 분석되는 것에 대해 동의했을까? 많은 유명인들이 소셜 공간에서 저지르는 실수 후에 ‘사적인 대화였을 뿐’이라고 언급할 때 우리는 과연 소셜 미디어 공간이 어디까지 사적이고 공적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는 디자인과 매우 관련이 높다 (실제로 우리에게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정착된 것은 집에 문이라는 장치가 생기면서라는 건축가의 주장도 있다). 작은 다이어리아와 일기 형태의 싸이월드, 그리고 일촌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온라인에서 간직하는 사적 공간의 느낌을 부여했으나 누구나 팔로우하고 누구나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트위터 공간에서는 그러한 느낌이 현저하게 줄었다. 페이스북 역시 끝없이 사적인 커뮤니케이션과 개방적 기능에 의한 노출, 확산의 문제를 일으킨다. 이제 우리에게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사적 공간과 공공 장소의 경계가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이퍼 퍼블릭 사회의 이슈는 이제 과거 오프라인의 공간과 온라인 공간이 멀리 격리되어 있던 시절에서 두 공간의 간격이 급격히 좁아지는 현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이 오프라인 경험에 영향을 주고, 오프라인 공간의 모습이 온라인에서 초 연결과 초 커뮤니케이션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크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인터넷 자경주의 (우리에게는 ‘지하철 **녀’로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의 확산이 그 한 예이다.

프라이버시의 보호 못지 않게 중요한 주제는 공공 공간의 확산이고 이제 이런 공공 공간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화된 공공 공간은 하버드 버크만 센터의 요하이 뱅클러 (Yochai Benkler) 교수가 이미 그의 책 ‘네트워크 부론(he Wealth of Networks)’에서 많이 언급한 개념이고 주로 온라인 공간의 확대를 의미하였지만, 이제는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길거리의 안내 보드, CCTV, 택시의 블랙 박스 등의 다양한 기기에 저장되고 공유되는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나와 관련된 행동 데이터. 스마트폰에서 수집하고 활용하는 데이터 패턴, 누구나 찍어 올릴 수 있는 고화질 비디오의 시대에는 이제 공공 장소에서의 나의 개인 행동이 그 공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온라인 공간으로 확산되어지는 것을 사회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나아가서 온라인 활동이 오프라인 공간에 전달되고 사용되는 사회를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체크인 하고 예약하고 음식 사진 올린 것 패턴을 분석하여 새로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나의 특성과 취향을 파악하고 나에 대한 서비스 품질을 높힌다면 나는 즐거워 할 것인지 아니면 소름끼쳐 할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온라인 활동은 이제 모아지고 분석되어서 오프라인 공간을 디자인하거나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내 행동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이용될 것이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을 분석하여 어떤 공간이 들어설 때 그러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다면 우리가 그 장소에 대한 호감이 증가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서비스 개선의 차원이 아니라 내가 얼마까지 내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람과 기기, 조직과 연결되고 지금까지와 다른 범위와 규모로 소통하면서 프라이버시가 아닌 퍼블리시(Publicy)를 활용하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회가 갖고 있는 제도와 정책, 가치관과 관념, 행동과 판단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과 마찰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서로 포용하면서 살아가게 할 것인가, 서로 다른 기준들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하는 점은 이제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어젠다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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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더 느끼는가?

최근들어 SNS 사용자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나 역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전 세계 12억명이 SNS를 사용하는 인류 역사상 없었던 이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애틀란틱 지에 올라오고 (‘Is Facebook Making Us Lonely?), 내가 받아보는 하바드 버크만 센터의 뉴스레터 중에 흥미로운 블로그가 하나 올라와 정독하게 되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조교수이며 버크만 센터의 펠로우인 ZEYNEP TUFEKCI 교수의 글이었다. ‘Does Facebook Cause Loneliness? Short answer, No. Why Are We Discussing this? Long Answer Below.‘ 라는 그녀의 블로그는 이에 관한 많은 연구 자료와 논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Tufekci 교수의 의견은 데이타를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가 인용한 펜실바니아 대학의 Keith N. Hampton 교수의 논문 ‘Core Networks, Social Isolation, and New Media‘에 따르면,

미국 GSS (General Social Survey)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미국인의 경우 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졌고, 코어 네트워크는 더 작아지고 덜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를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와 연관해서 보면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소셜미디어의 특정한 사용에 의해 코어 네트워크를 증가시키고 더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고립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의 그의 파악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연구 논문에는 학생이었던 그의 제자들이 공동 저자로 나오는데 이철주, 허은자 라는 한국 이름이 등장한다)  그의 연구는 2009년 더 퓨 인터넷의 리서치 리포트에 데이타가 잘 나와 있다.

더 퓨인터넷에서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조사 분석을 발표하는데 2011년 6월에 발간한 ‘Social networking and our lives‘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갖는 코어 타이의 평균이나 사회적 지지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다 비 사용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밝혀진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 미국인 중 중요한 얘기를 의논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의 수(discussion confidants)가 2008년 1.93에 비해 2.16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자는 이 숫자가 2.27로 늘고 SNS 사용자는 2.45로 더 증가한다.  SNS 사용자는 더 많이 코어 타이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과 5%만이 그런 친구가 아예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SNS의 긍정적 역할로 볼 수 있다
  • 40%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자기의 실제 제일 가까운 코어 타이의 사람들을 페이스북에서 다 친구를 맺었다고 한다.  즉 실제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이제 페이스북에서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사용자는 사회적 지원의 모든 면에서 (감정적 지원, 동료의식, 도구적 지원)에서 비 사용자에 비해 미국 평균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터넷 사용자라고 해도 동일하게 수준으로 이웃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지역 그룹에 참여도도 비슷하고, 오히려 정치 참여 의지와 투표율은 더 높았다.
이러한 데이타를 보면 적어도 페이스북같은 SNS에서 사람들이 가깝고 신뢰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 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Tufekci 교수의 기본 생각은 인터넷 시대에는 태어나서 얻게되는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ascribed ties”는 약해지고 서로 같은 공감이나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 같은  “achieved ties” 는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교외 거주, 긴 통근 시간, 오랜 근무 시간, 커뮤니티나 시민 기관들의 감소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지 온라인 사회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기사들이 소셜미디어나 기술 때문에 우리가 더 외로워졌다고 하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공감을 표하는 것일까?

그녀의 설명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쨌던 우리는 예전 보다 더 외로워지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향으로 뭔가 쉽게 설명하는 서사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전 보다 더 외로운데 우리가 훨씬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이나 SNS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고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명은 근본적으로 면대면 사회성이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온라인에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오프라인에서도 사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이 외로움이나 고립을 꼭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아직 그녀의 연구 주제인데 (사실 이 설명이 맘에 제일 든다) ‘사이버 비사회성(Cyberasociality)’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실 세계에서 하는 만큼 온라인에서 사회성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성격을 의미한다. (이에 관한 그녀의 논문은 ICWSM2010에서 발표한 ‘Who Acquires Friends hrough Social Media and Why?”Rich Get Richer” versus “Seek and Ye Shall Find“‘ 이다.  또는 아직 준비 중인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이버 비사회성은 우리가 글을 보면서 뇌에서 이를 언어로 변환하여 생각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못하는 난독증이 있듯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회성을 실제 면대면 사회성으로 매핑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이는 어떤 동일한 집단이나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누구는 온라인 사회성을 실제 사회성으로 잘 변환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누구는 이런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온라인 사회성이 부족하면 온라인 활동을 아무리 해도 실제 사회성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면대면 사회성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쓰면서 발견한 에스티마의 블로그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우리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MIT의 사회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교수의 얘기 역시 흥미롭다. 그녀의 최근 저서 ‘Alone Together‘에서 많이 언급한 우리가 더 많은 기술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사람과의 대화와 관계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강연할 때마다 늘 언급하는 책이다).  그녀의 TED 발표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터라 사람들은 기술의 사용이 우리의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오해할 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데이타가 보여주듯이 우리가 소셜미디어나 기술로 더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는 우리에게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까운 친구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 대화의 상실로 인한 사회성 결여를 이끌어 내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터클 교수의 판단은 그녀가 전통적인 시각으로 사람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터클 교수의 얘기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에 비해 더 외로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 지려고 하는 것에는 오히려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변화이다.

오늘 뉴스에서 홀로 사는 가구 비중이 25.3%로 이제 가구 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외로움은 이러한 사회 구성과 현대성이 가져오는 것이지 기술이나 SNS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SNS는 오히려 이러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추가 자료와 기사:

1. ‘‘아는 사람’ 많지만 ‘말할 사람’이 없다‘ – 문화일보.
2. http://www.digitaltrends.com/social-media/study-why-facebook-is-making-people-sad/
3. http://www.slate.com/articles/double_x/doublex/2011/01/the_antisocial_netwo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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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2011년 11월 퓨 연구소(The Pew Research Center)는 미국인 2,277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최신 조사 자료(Why American Use Social Media)를 발표하였는데,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제일 중요한 이유로 67%는 현재 친구들과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꼽았고, 64%는 가족과 관계 유지를 50%는 연락이 끊어졌던 옛날 친구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다.  취미나 흥미가 같은 타인과 연결은 14%, 유명인, 운동 선수, 정치인들의 얘기를 읽기 위한 것은 5%, 잠재적인 로맨스나 데이트 상대를 찾기 위한 것은 3%로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의 이유를 들은 사람은 여성 사용자와 남성 사용자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여성은 72%인데 반해 남성은 55%가 이유로 꼽았다. 공통의 취미와 흥미를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한 목적은 30-49세의 사람들의 16%, 50-64세의 사람의 18%에 비해 18-29세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10%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목적에는 오히려 남자의 56%가 1차 이유 또는 부차적 이유라고 말했고, 여성 사용자의 44%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국내 사용자들에 대한 조사와는 조금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지난 2010년 10월 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마이크로블로그 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마이크로블로그로 분류되는 트위터와 미투데이 사용자 2,24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사용 계기의 1위는 81.2%가 ‘정보습득을 위해서’였고 2위가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66.1%)’ 였고,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35.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트위터의 주 목적이 뉴스와 정보습득이라는 2010년의 조사와 같은 맥락이며, 실명보다 필명을 사용하는 네트워크에서는 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 목적일 수 밖에 없는 가정에 맞는 조사 결과이다. 즉, 퓨 연구소의 조사 처럼 실명과 실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SNS에서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친구나 가족 관계 유지가 당연히 중요한 동기나 목적이 되지만, 트위터나 미투데와 같이 필명이나 익명을 기반으로 하고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기반을 하는 경우에는 정보와 새로운 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트위터에서 유명인이나 공인 처럼 실명 기반의 사용자들은 자신의 생각 전파나 팬 관리라는 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의 사용 동기에 대한 초기 학계의 연구는 2007년 11월 CACM에 발표한 뉴욕 폴리테크닉 대학의 Oded Nov 교수의 ‘What Motivates Wikipedians?‘와 2004년 마찬가지로 CACM에서 발간된 UC Irvine의 Nardi 교수와 스탠포드 대학 CSLI의 Diane Schiano 등이 조사한 논문인 ‘Why We Blog‘ 등이 있다.Nov 교수는 위키피디어에 공헌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오픈소스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유사함을 기반으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동기 모델에 오픈소스 사용자의 특성을 더해서 조사하였고, 가장 큰 동기는 흥미롭게도 ‘재미’였다. 물론 동기가 높다고 참여의 활동성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밝혔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 참여동기는 동기 측면에서는 2위에 해당하지만 실제 그런 동기 보유자들의 참여 수준은 매우 낮음을 찾아낸 점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스탠포드 학생들의 블로그 활동을 중심으로 조사한 Nardi 교수의 논문에서는 사람들이 다양한 동기를 갖고 블로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일상 기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의견의 제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블로그 작성 과정에서의 아이디어 창출’, ‘블로그를 커뮤니티 포럼으로 사용하기’ 등의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었다.2008년 영국 Bath 대학의 경영대 Adam Joinson이 CHI2008에서 발표한 논문 ‘‘Looking at’, ‘Looking up’, ‘Keeping up with’ People? Motives and Uses of Facebook‘ 은 페이스북의 사용 목적에 초점을 맞춘 논문이다.  미디어 분야의 수용자 연구 이론인 ‘이용과충족이론 (Use and Gratification Theory)를 기반으로 분석한 이 논문에서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즐긴다고 생각할 때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과 페이스북을 즐기는 것을 어떤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지, 어떤 사용이 가장 중요한지 등을 물어봤다. 결과 소셜 커넥션의 충족은 사용 빈도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콘텐트에 대한 충족은 사용시간의 증가를 가져왔다.  또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surveillance에 대한 욕구는 사이트 방문 횟수의 증가를 가져옴을 알 수 있었다.

이 처럼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SNS나 소셜미디어의 참여 동기와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왔으며, 이를 연령 별, 성별, 인종별로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설문 조사를 다시 확인하는 연구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즉, 사용자들이 얘기하는 동기나 욕구충족을 위해 진짜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하는 행위데이타를 우리가 이제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친구나 가족과 커뮤니케이션이 타인에 비해 그만큼 있었는지 실제 데이타를 갖고 분석하여 확인하는 작업이 이제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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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분리 이론 (Six Degrees of Separation) 과 소셜네트워크

2011년 11월 페이스북의 데이타팀이 7억2천백만명의 690억 친구 관계를 분석한 결과 페이스북 사용자의 평균 거리는 4.74라는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6단계 분리’ 이론이 소셜네트워크 상에서는 더 짧아졌다는 소식이 여러 미디어에서 보고 되었다.

6단계 분리 이론은 1967년 하바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이 Psychology Today에 발표한 논문 ‘The Small World Problem‘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밀그램 교수 자신은 ‘6단계 분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6단계 분리 이론을 처음으로 예측한 사람은 헝가리의 극자가이면 저널리스트였던 프리게스 카린시 (Frigyes Karinthy)로 알려져있다.  1929년도에 발표한 그의 단편소설 ‘Chains’ 을 통해서 발전되는 문명의 영향으로 인간 사이의 거리는 더 좁아지는데, 당시 전세계 인구 15억명 중 임의의 사람을 선택해도 5명의 사람을 거치면 연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유명한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Albert-László Barabási)의  ‘링크‘라는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후 많은 소셜네트워킹 연구자들이  이 가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으며, 마이클 구레비치(Michael Gurevich)의 시뮬레이션과 1967년 스탠리 밀그램의 ‘스몰월드’ 실험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실험은 미국내의 사람들간 연결 거리의 평균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지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아니었다.

그의 1967년 실험은 다음과 같다.

1. 출발지로 네브라스카 오마하와 캔사스의 위치타 시를 선택하고 도착지로는 보스톤을 선정하였다.  출발지로 두 도시가 선택된 것은  두 도시가 미국 내에서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고립된 곳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  오마하와 위치타에서 임의로 선택된 사람에게는 편지가 주어지는데, 여기에는 이 연구의 목적과 보스톤의 목표로 설정된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있다.  만일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면 그 편지를 그대로 보내면 되지만,

3. 개인적으로 보스톤에 있는 사람을 모른다면 자기 친구나 친지 중에서 그 사람을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보내도록 한다. 사실 편지에는 이름표가 같이 주어지는데 이 때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싸인해서 보내도록 하며, 동시에 하바드에 엽서를 보내 그 과정을 추적하도록 하였다.

4.  편지가 목표한 사람에게 도달하면 연구자들은 이름표를 검토해서 몇 단계에 걸쳐 왔는지를 확인하고, 도달하지 않은 편지는 도착한 엽서를 통해 어디서 끊어졌는지를 확인한다.

이를 통해  도달한 경로의 평균 길이는 5.5와 6 정도가 되는 것을 확인했지만, 어떤 것은 1,2 단계에서 도착했고 9단계나 10단계를 거친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실험 결과는 임의의 두 사람 사이에 5.2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결국 6단계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실제 도착한 것은 전체  64건에 불과하였고 어떤 실험에서는296건의 편지 중에 232건은 전혀 도착하지 않았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성별간의 전달이 서로 다른 성별 간의 전달보다 세 배나 더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결론으로 미국의 임의의 사람들은 6단계를 통해 연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밀그램 자신이 ‘6단계 분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그 개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밀그램의 이 실험은 그러나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거나 새로운 실험에서 또 다른 결과들이 도출되기도 했다.  일차적인 비판은 스타터로 선택된 사람들이 랜덤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광고에 의해 모집되었다는 점과 다음 상대를 선택할 때 받아야 하는 최종 목적지의 사람을 잘 알거나 가까운 경로에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선택했다는 점인다.  즉 경로상 가장 최소경로를 만들어 낸다는 보장이 안되는 것이고 이는 편향과 과평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2003년에 발행된 던칸 와츠 박사의 ‘Six Degrees: The Science of a Connected Age‘를 보면 밀그램의 실험에는 더 많은 맹점이 나타난다.  일단 출발자로 선정된 사람 중에 100명 정도는 실제로 보스톤에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과 네브라스카에서 선정된200명 중에서도 50%는 모두 블루칩 주식 투자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밀그램은 메일링 리스트를 구입했다고 한다). 즉, 이 실험은 서로 다른 세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심리학자 쥬디스 클라인펠드 (Judith Kleinfeld) 는 밀그램의 실험을 종이 편지가 아닌 이메일을 통해서 수행하고자 밀그램의 실험과 그 이후 다른 학자들의 실험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실험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글로벌 경향을 나타낸다고 전혀 볼 수 없는 수준의 실험들임을 발견하였다.

2001년 콜롬비아 대학의 던칸 와츠 교수와 동료들은 웹사이트를 이용해서 166개국의61,168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전송을 통해 밀그램의 실험을 재현해 보았다. 전송된 이메일의 체인은 23,163개였다. 전 세계의 18명의 대상에 대해 이메일을 도착하게 만드는 이 실험에서는 다양성을 위해 미국의 교수, 호주의 경찰, 에스토니아의 기록물 조사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최종 목적지로 선택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전달된 이메일은 5단계 (같은 나라의 사람들) 내지 7단계 (다른 나라의 사람들)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고 언론은 인터넷이 결코 실 세계의 인간 관계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와츠 교수는 다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실제 이메일이 전달된 것은 384개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야후 리서치로 자리를 옮긴 던칸 왓츠 박사는 2011년에 다시 페이스북을 이용하여 메시지 전달을 통한 세계 사람들 사이의 단계를 발견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웹사이트를 통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바로 페이스북이 실제 사람 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실험에 비해 훨씬 더 실상을 반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2006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에릭 호로비츠와 쥬르 레스코벡 (Eric Horvitz and Jure Leskovec)은 연구의 일환으로 MSN 메신저를 사용하는 전세계 사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 패턴 스냅샷을 캡처했다.  이는 2억4천만 명이 사용한 300억 건이 넘는 대화를 반영한 것으로 그 당시 전세계 인스턴트 메시징 커뮤니케이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텍스트 내용은 제거하고 통계치만 모았으며, 1억8천만개의 노드와 방향성이 없는13억개의 엣지로 구성된  당시 최대의 커뮤니케이션 그래프를 구성했다. 연구의 한 부분으로 소위 말하는 ‘6단계 분리’ 이론을 전 지구적으로 검증하였고, 서로 대화하는 메신저 사용간의 평균 도달 거리는 2006년 7월 기준으로 6.6임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비슷한 나이, 언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 다른 성별간의 대화가 같은 성별간의 대화보다 더 자주있고 더 오래 한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이 결과는 2008년 World Wide Web 컨퍼런스 (WWW2008)에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며, 더 자세한 보고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보고서로 출간되었다.

2010년 Sysomos사는 52억개의 트위터 상의 관계를 기반으로 이 문제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트위터에서의 사람 간의  평균 거리는 4.67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83%의 사람들까지는 5 단계를 거치면 도달할 수 있고, 96%의 사람은 6단계를 거치면 도달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팔로우를 찾아내는 스텝은 단지 3.32 스텝만 가면 팔로우를 만난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 번에 발표한 페이스북 사용자에 대한 연구는 페이스북과 밀라노 대학팀의 공동 연구인데, 99.6%의 사람들 짝은 5단계(6 hops)로 연결이 되며, 92%는 네 단계 (5 hops)로 연결이 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밝혀진 결과는 임의의 두 사람간에는4.74 hops로 2008년의 조사에는 5.28 hops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 동안 궁금했던 평균 친구수도 밝혔는데 10%의 사람들은 10 명 이하의 친구를20%의 사람은 25명 이하지만 평균 친구 수는 190명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페이스북의 공식 통계 페이지에 나타난 130명이 아닌 숫자를 밝혀낸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이는 그동안 던바 넘버인 150명을 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보다는 더 많은 친구 관계가 평균이라는 점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The Pew Internet and American Life Project에서 설문 조사 대상에서는 평균 친구 수가 229명으로 나와서 좀 더 큰 규모 조사 내용을 알고 싶었다.

또한 친구 관계를 같은 국가로 한정하면 분리 단계는 더 짧아 지는데 한 국가로 한정하면 그 숫자는 3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자세한 발표 내용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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